투자 실사 업무를 하다 보면, 프론트 투자자와 실제 심사팀이 보는 관점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프론트 투자자는 사업 아이템과 팀을 보고 긍정적으로 판단하는데, 정작 심사팀 회의실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재무제표를 펼쳐놓고 하나씩 뜯어보기 시작하죠.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신뢰성 문제 하나가 모든 걸 엎어버리는 경우를 여러 번 봤습니다. 아무리 사업이 유망해 보여도 장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투자는 성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투자심사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재무제표의 어떤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는지 정리했습니다.
1. 재무제표의 신뢰성 – 이 장부, 믿을 수 있나요?
투자심사팀이 재무제표를 받아들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숫자의 크기를 확인하는 게 아닙니다. 이 장부를 믿어도 되는지부터 따집니다.
실무에서 투자자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대표적인 신호들이 있습니다. 매출은 수억 원씩 잡혀 있는데 대손충당금이 한 푼도 설정되어 있지 않거나, 6개월 넘게 회수되지 않는 매출채권이 그대로 쌓여 있는 경우입니다. "이 회사, 외상 매출 100% 회수 자신한다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죠.
재고자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재고 회전율을 계산해보니 6개월 이상 창고에 묵은 재고가 수두룩한데 재고자산평가손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으면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매년 감가상각 방법이나 수익 인식 기준이 바뀌는 것도 위험 신호입니다. 회계처리가 일관되지 않으면 "편한 대로 숫자를 조작하는 건 아닌가" 의심받습니다.
특수관계자 거래도 예민한 부분입니다. 대표 본인이나 친인척 회사는 물론이고, 동료 스타트업이나 친분 있는 회사와의 거래 조건이 일반 시장 조건과 명확히 다른데 아무런 설명이 없다면 투명성에 의문을 품습니다.
아직 외부감사 대상이 아닌 작은 회사라도, 투자 과정에서는 어차피 회계법인의 실사를 받게 됩니다. 그때 이런 문제들이 터져 나오면 투자는 그 자리에서 무산됩니다. 평소 회계 기준에 맞춰 성실하게 장부를 관리하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2. 매출액 vs 영업이익 – 성장하고 있나요?
손익계산서를 볼 때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건 절대 금액이 아니라 증가율입니다. 올해 매출이 10억이든 100억이든, 그것보다 중요한 건 작년 대비 얼마나 늘었느냐입니다. 투자자들은 보통 과거 2~3년 치 데이터를 요청해서 추세를 분석합니다.
전년 대비 150% 성장했다고 하면, 바로 다음 질문이 이어집니다. "이 성장세가 지속 가능한가요? 일회성 거래 아닌가요?"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다면 그 원인을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성장률이 가속화되는 추세라면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이죠.
영업이익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 스타트업은 당연히 적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투자자도 그걸 압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업이익률(영업이익/매출액)의 추세를 봅니다. 매출이 늘면서 이익률이 조금씩 개선되는 흐름이 보이면 "아,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구나" 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반대로 매출은 쑥쑥 늘어나는데 이익률이 계속 악화된다면, 수익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죠.
3. 자산의 구성 – 진짜 가치 있는 자산인가요?
재무상태표의 자산 항목을 보면서 투자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건 구성비입니다.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자산 구성은 명확합니다. 현금성 자산이 충분하면 단기 지급능력이 양호하다고 봅니다. 매출채권이 적정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으면 회수 리스크가 통제되고 있다는 신호죠. 특허권이나 상표권 같은 지식재산권이 제대로 등록되어 있으면 기술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아합니다.
반면 의심스러워하는 자산 구성도 있습니다. 무형자산 비중이 총자산의 50%를 넘어가면 경계심을 드러냅니다. 특히 개발비, 영업권, 특허권 같은 무형자산은 실제 가치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개발비 자산화가 과도하면 "실제로는 비용인데 자산으로 둔갑시킨 거 아니냐"는 의심을 받습니다.
재고자산이 전년 대비 급증했다면 판매가 막히고 있는 건 아닌지 따져봅니다. 장기 미수금이나 가지급금이 많다면 회수 불가능한 돈이 빠져나간 건 아닌지 파고듭니다. 특히 가지급금은 대표가 회사 돈을 개인적으로 빼간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 쉽습니다.
투자자들은 장부가액과 실제 시장가치가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하면 감정평가나 기술평가를 별도로 진행해서 정확한 가치를 산정하죠.
4. 부채비율과 구성 – 언제 갚아야 하나요?
부채는 규모보다 상환 시기와 성격이 중요합니다.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유동부채와 그 이후에 갚아도 되는 비유동부채의 비율을 보면서, 회사가 단기적으로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지 판단합니다. 부채 총액이 크더라도 상환 기한이 넉넉하면 관리 가능하지만, 유동부채 비중이 높으면 유동성 위험이 크다고 봅니다.
부채의 성격도 뜯어봅니다. 선수금이나 예수금은 고객에게 미리 받은 돈으로 향후 매출로 전환될 항목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수금이 많으면 "고객들이 돈을 먼저 내고 제품을 기다리는구나" 하고 긍정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차입금이나 사채처럼 이자가 붙는 차입성 부채가 많으면 재무 부담을 우려합니다. 미지급금이나 미지급비용이 과도하게 쌓여 있으면 거래처나 직원에게 돈을 제때 못 주고 있다는 뜻이어서 자금 흐름이 막히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죠.
투자자들은 부채비율(부채총계/자본총계)을 통해 재무 레버리지 수준도 확인합니다. 적정 수준의 부채는 성장을 위한 자금 조달 수단이지만, 과도한 부채는 재무 건전성을 저해합니다. 업종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가면 부담스럽다고 평가합니다.
5. 자본 – 결손금은 얼마나 쌓였나요?
자본 항목에서는 자본금과 주식발행초과금을 통해 기존 자본 규모와 주주 현황을 파악합니다. 이건 투자 후 지분율을 산정하는 데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투자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건 결손금입니다. 결손금은 회사가 지금까지 '까먹은' 돈입니다. 이익잉여금이 플러스라면 그동안 벌어서 쌓아둔 이익이 있다는 뜻이고, 결손금이 쌓여 있다면 누적 손실이 발생했다는 의미입니다.
결손금 규모가 자본금을 넘어서는 자본잠식 상태는 부정적 신호입니다. 자본 총계가 마이너스인 완전자본잠식 상태라면 투자 유치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이 회사에 투자하면 내 돈도 결손금 메우는 데 쓰이는 거 아냐?" 하는 우려가 생기기 때문이죠.
이럴 땐 투자 전에 자본 구조 개선 작업이 필요합니다. 유상증자로 자본금을 늘리거나, 채권자가 빚을 출자로 전환하거나, 채무를 면제받는 방식으로 자본 총계를 플러스로 만들어야 투자 테이블에 앉을 수 있습니다.
6. 현금흐름 – 영업으로 현금이 들어오고 있나요?
손익계산서에 이익이 잡혀 있어도 현금이 없으면 회사는 부도날 수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현금흐름표를 통해 실제 돈의 움직임을 확인합니다. "흑자도산"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거든요.
현금흐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영업 활동, 투자 활동, 재무 활동 현금흐름입니다. 초기 스타트업은 보통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아직 수익 창출 전), 투자활동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미래를 위한 투자), 재무활동 현금흐름이 플러스(투자 유치로 자금 조달)인 패턴을 보입니다. 투자자도 이걸 압니다.
하지만 그들이 집중해서 보는 건 영업활동 현금흐름의 추세입니다. 영업에서 현금이 얼마나 들어오고 있는지, 현금 유출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손익계산서상 매출이 늘어도 외상 비중이 높거나 재고가 쌓이면 실제 현금은 들어오지 않거든요.
투자자들이 꼭 물어보는 게 또 있습니다. 바로 런웨이(Runway)입니다. 현재 보유 현금을 월평균 현금소진액(번레이트, Burn Rate)으로 나눈 값인데, 쉽게 말해 "지금 있는 돈으로 몇 개월이나 버틸 수 있나요?"를 묻는 겁니다. 런웨이가 12개월 미만이면 투자금을 받아도 다음 라운드 전에 현금이 바닥날 수 있어 위험 신호로 봅니다.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 집행하고 나서 1년도 안 돼서 또 돈 달라고 하면 곤란하니까요.
마치며
실무에서 보면 프론트 투자자의 열정과 심사팀의 냉정함 사이에서 많은 딜이 좌초됩니다. 사업 아이템이 아무리 좋아도 재무제표에서 신뢰성 문제가 발견되면 투자는 무산됩니다.
반대로 아직 매출 규모가 작고 적자여도, 재무제표가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고 회계처리가 일관되다면 투자 가능성은 충분히 열립니다. 투자자들은 현재의 숫자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보려 하고, 그 가능성을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재무제표에서 찾으려 합니다. 투자 유치를 준비 중이라면 평소 회계 기준을 지키며 신뢰성 있는 재무제표를 만들어두는 게 가장 기본이자 핵심입니다. 화려한 IR 자료보다 깨끗한 장부 한 권이 투자자의 마음을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