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법인의 재무상태표를 보면, 유형자산이 취득가 그대로 계상되어 있고 감가상각비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세법만 놓고 보면 이런 처리에도 큰 문제는 없지만, 회계 기준에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감가상각을 둘러싼 이 간극은, 회계와 세법이 애초에 목표로 하는 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깁니다.
감가상각, 왜 하는 걸까요?
1) 회계에서 바라보는 감가상각
회계의 목적은 기업의 실제 성과를 왜곡 없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5,000만 원짜리 기계를 구입했다고 해서, 그 5,000만 원을 취득 연도에 전부 비용으로 잡아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 해의 이익이 급격히 줄어들고, 다음 해부터는 비용이 없는데도 그 기계로 매출을 올리는 이상한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유형자산의 취득원가를 내용연수에 걸쳐 나누어 비용으로 배분합니다. 이게 감가상각입니다. 기업회계기준은 "유형자산의 감가상각대상금액은 해당 자산을 사용할 수 있는 때부터 내용연수에 걸쳐 배분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2) 세법에서 바라보는 감가상각
세법은 다릅니다. 세법상 감가상각의 목적은 과세소득 계산을 위한 비용 인정입니다. 법인세법은 자산 종류별로 내용연수와 상각방법(정액법, 정률법 등)을 정해놓고, 그 범위 안에서만 손금(비용)을 인정합니다.
여기서 핵심 차이가 드러납니다. 회계는 '진짜 이익'을 제대로 측정하려는 작업이고, 세법은 '세금을 언제, 얼마나 낼지'를 조정하는 작업입니다. 목적 자체가 다릅니다.
세법의 독특한 제도: 임의상각
법인세법상 감가상각은 임의상각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각 자산별로 세법에서 정한 내용연수·상각률에 따라 계산한 상각범위액 한도가 있고,
결산서에 감가상각비를 비용으로 계상한 부분만 그 한도 내에서 손금으로 인정합니다.
감가상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해서 별도의 가산세가 부과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번 손금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각부인액은, 이후 사업연도에 상각범위액 범위 내에서 점진적으로 손금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세법은 감가상각을 "반드시 하라"고 강제하기보다는, 감가상각비를 비용으로 계상한 범위 안에서만 세무상 비용(손금)으로 인정해 주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안 한다고 해서 별도의 제재를 받지는 않습니다. (조세특례제한법상 일부 면제·감면 법인은 별도 규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감가상각을 최소화하는 이유
특히 소규모 법인의 경우, 세무대리인이 세법상 허용 범위 안에서 감가상각을 최소한으로 계상하는 방식을 택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소형 기계장치·비품·차량처럼 규모가 크지 않은 자산은 나중에 처분할 때 남은 장부가를 한 번에 비용(처분손실)으로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임의상각제도 덕분에, 매년 조금씩 상각하지 않았다고 해서 세법상 불이익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둘째, 감가상각을 정확하게 관리하려면 취득일·취득원가·자본적 지출, 폐기·처분일, 세법상 내용연수·상각방법, 장부·세무상 미상각 잔액 차이까지 계속 추적해야 합니다. 기장료가 낮은 소규모 고객에게는 이 모든 작업을 매년 정교하게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세법상 감가상각은 결산조정 항목이라, 결산서에 감가상각비가 계상된 범위 안에서만 손금으로 인정됩니다. 신고조정으로 마음대로 상각비를 추가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 비용을 계상할 필요가 있는 시점에 맞춰 감가상각을 인식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접근이 옳다·그르다를 단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왜 그런 관행이 생기는지, 구조적인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률법을 많이 쓰는 이유
세법상 감가상각방법을 별도로 신고하지 않으면, 법인세법 시행령에서 정한 기본 방법이 적용됩니다. 건축물과 무형자산은 정액법, 그 밖의 대부분 유형자산은 정률법이 기본값입니다. 그래서 별도 신고를 하지 않은 많은 법인들이 자연스럽게 정률법으로 감가상각을 하게 됩니다.
정액법은 매년 일정 금액을 상각하지만, 정률법은 매년 잔액에 일정 비율을 곱해 상각하기 때문에 초기에는 상각비가 크고 이후에는 줄어드는 형태입니다. 총 상각액은 같지만, 정률법은 앞단에 비용이 몰려 초기에 세부담을 줄이고 현금 유출을 늦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세무 관점에서 정률법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 실무에서도 정률법이 활용되는 비중이 상당한 편입니다.
감사·실사를 받으면 달라지는 기준
여기서 회계와 세법의 차이가 역전됩니다.
1) 회계기준상 감가상각은 사실상 필수
기업회계기준, 공익법인회계기준 등은 감가상각을 통해 자산의 가치 감소를 재무제표에 반영하도록 요구합니다. 감가상각을 하지 않으면 자산과 이익이 모두 과대계상되고, 그만큼 재무제표의 신뢰성과 비교가능성도 떨어지게 됩니다.
2) 외부 감사·실사에서는 취득시점부터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외부감사나 인수실사(FDD)를 받게 되면, 감사인·실사팀은 고정자산명세를 기준으로 해당 자산이 취득 시점부터 회계기준에 따라 감가상각되었어야 한다고 보고 재무제표를 재구성합니다. 과거에 감가상각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면 누적 감가상각비를 한 번에 반영해 이익잉여금을 수정하고, 필요한 경우 전기 오류수정이나 회계정책 변경으로 과거 이익도 함께 조정하게 됩니다.
세법은 감가상각을 안 해도 봐주지만, 외부에서 재무제표를 검토하는 순간(감사·투자·M&A)에는 처음부터 했어야 한다고 보고 전면 재조정합니다. 이때 한 번에 이익이 크게 줄어들고, 과거 재무제표를 수정하는 작업이 필요해집니다.
정리: 회사 규모에 맞는 선택
감가상각을 둘러싼 실무 관행은, 세법의 임의상각제도와 기장료 구조, 리스크 관리라는 현실적 배경에서 나옵니다. 이는 비난할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 배경을 이해하고 회사 상황에 맞게 판단할 문제입니다.
다만 회사가 외부 감사, 투자 유치, 실사, M&A를 염두에 둔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회계 기준에 맞는 감가상각 정책을 초기에 세우고 꾸준히 반영하는 것이 장부를 한꺼번에 재작성하는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소규모로 안정적으로 사업을 유지할 계획이라면, 현재와 같은 세법 중심의 실무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한 가지 선택입니다. 다만 회사가 성장하고 있거나, 외부 자금을 받을 계획이 있다면 지금부터 회계 기준에 맞는 감가상각 정책을 세우고 꾸준히 반영하는 편이 장기적으로는 더 효율적입니다.
재무제표는 결국 회사의 신뢰를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에, 언젠가 외부의 시선을 받게 될 것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