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투자실사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게 바로 CaPex였어요."
투자 유치를 진행한 스타트업 대표님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투자자 측 회계사는 향후 몇 년간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회사 측은 기존 설비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단순해 보이는 '투자 금액' 하나가 기업 가치를 수십억, 수백억 원까지 벌려놓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투자실사와 가치평가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논의되는 항목, CaPex(Capital Expenditure, 자본적 지출)에 대해 정리해 드립니다.
1. CaPex, 왜 이렇게 중요할까?
회계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분명 영업이익이 100억 원 났는데, 통장에 돈이 없어요."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CaPex입니다.
기계를 50억 원에 샀다고 해서 올해 비용이 50억 원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 회계상으로는 자산으로 잡힌 뒤 5년이나 10년에 걸쳐 감가상각비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비용 처리됩니다. 하지만 현금은 이미 50억 원이 빠져나간 상태입니다.
투자자가 보는 건 결국 "이 회사가 과연 현금을 잘 벌어들이는가"입니다. 아무리 장부상 이익이 많아도, 그 이익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설비에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면 실제로 주주에게 돌아올 몫은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2. CaPex와 OPex, 어떻게 다른가?
CaPex (Capital Expenditure, 자본적 지출)
미래 수익을 만들기 위한 투자입니다. 공장을 짓거나, 생산 기계를 사거나, 건물을 매입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지출 시점에는 자산으로 잡히고, 내용연수에 걸쳐 감가상각비로 조금씩 비용화
현금은 지출 시점에 크게 나가지만, 손익계산서에는 천천히 반영
OPex (Operating Expenditure, 영업비용)
일상적인 사업 운영에 드는 비용입니다. 직원 급여, 사무실 임차료, 원재료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지출 즉시 비용으로 처리되어 당기 순이익에 바로 반영
발생한 만큼 즉시 비용 인식
실무에서 주의할 점
실사에서 자주 발견되는 문제는 이 둘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입니다. 본래 수선비로 비용 처리해야 할 항목을 자산으로 잡아 당기 이익을 높이거나, 반대로 자산화해야 할 지출을 비용 처리해 과세소득을 낮추는 사례가 있습니다. 실사 담당 회계사들이 공장을 직접 방문해 설비를 확인하고, 회사 담당자와 논의하며 지출 내역을 하나하나 검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 CaPex의 두 가지 유형: 성장 vs. 유지보수
같은 기계를 사더라도, 그 목적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1) 성장 CaPex (Expansion/Growth CaPex)
매출을 늘리기 위한 공격적 투자입니다.
목적: 생산능력 확대, 신제품 출시, 신규 시장 진출
특징: 매출 성장률과 직접 연동
예시: 제2공장 신설, 생산라인 2배 증설, 신규 매장 오픈
예를 들어 매출이 2배 늘어난다는 계획인데 설비 투자가 빠져 있다면, 그 사업계획은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2) 유지보수 CaPex (Maintenance CaPex)
현상 유지를 위한 필수 투자입니다.
목적: 현재 경쟁력과 생산능력 유지
특징: 통상 감가상각비 수준 이상으로 발생
예시: 10년 된 사출기 교체, 노후 전산시스템 업그레이드, 공장 지붕 보수
기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노후화되고 기술은 발전하기 때문에, 현 수준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재투자가 필요합니다.
실무 구분 기준
가치평가를 할 때 이 둘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동률 50% + 증설 계획 → 성장 CAPEX가 아닐 가능성
가동률 95% + 매출 2배 목표 → 대규모 성장 CAPEX 필수
과거 3년 CaPex가 감가상각비의 80~120% → 정상적인 유지보수 수준
갑자기 감가상각비의 300% 수준으로 급증 → 성장 투자 또는 노후 설비 일괄 교체
4. 재무제표에서 CaPex 파악하기
많은 분들이 "손익계산서에서 CaPex를 어떻게 계산하나요?"라고 물으시는데, 엄밀히 말하면 손익계산서만으로는 CaPex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CaPex는 자산 취득이므로 재무상태표의 자산 변동을 봐야 하고, 실제 현금 지출은 현금흐름표의 투자활동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무상태표를 활용한 역산 방식
CaPex = (기말 유형자산 - 기초 유형자산) + 감가상각비
(자산 처분이 없다고 가정할 때)
계산 예시:
기초 유형자산: 500억 원 / 기말 유형자산: 600억 원 / 감가상각비: 80억 원
CaPex = (600 - 500) + 80 = 180억 원
CaPex와 감가상각비의 관계
CaPex와 감가상각비는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과거에 집행한 CaPex가 현재 감가상각비로 나타나고, 현재 감가상각비는 미래 CaPex의 최소 기준선이 됩니다.
기계를 쓰면 닳고, 내용연수가 끝나면 교체해야 합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감가상각비만큼은 다시 설비 투자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재무관리의 기본 가정입니다.
5. 가치평가에서 CaPex는 어떻게 쓰이나
기업 가치는 결국 "주주가 가져갈 수 있는 현금"의 현재가치 합입니다. DCF(현금흐름할인법) 모델에서 사용하는 잉여현금흐름(FCFF, Free Cash Flow to Firm) 계산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FCFF = 세후영업이익(NOPLAT) + 감가상각비 - CaPex - 순운전자본 증감
여기서 CaPex는 차감 항목입니다. CaPex가 클수록 FCFF는 줄어들고, 기업 가치는 낮아지는 구조입니다.
손익계산서상 영업이익에는 현금이 나가지 않는 비용인 감가상각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회사 영업이익 100억 원이에요!"라고 해도 그중 30억 원이 감가상각비라면, 영업활동에서 실제로 유입된 현금은 그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30억 원만큼, 혹은 그 이상을 다시 설비에 투자해야 공장이 돌아갑니다. 따라서 감가상각비를 더한 뒤 CaPex를 정확히 빼주는 것이 진짜 현금 창출력을 파악하는 핵심입니다.
매출 성장과 CaPex의 논리적 일관성
현재 생산능력이 연 1만 개이고 가동률이 90%인데, 3년 후 목표 판매량이 연 2만 개라면 최소한 생산능력을 2배로 늘릴 성장 CaPex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합니다. 매출을 늘리려면 물건을 더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설비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치평가 작업에서 투자은행(IB)이나 평가기관이 가장 많이 다투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회사 측은 "효율화로 충분히 성장 가능합니다"라고 주장하고, 평가기관은 "이 정도 성장률이면 설비 증설이 불가피합니다"라고 맞서는 구조입니다. 결국 어느 쪽 가정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기업 가치가 크게 달라집니다.
6. 투자실사(FDD)에서 CaPex는 어떻게 쓰이나
투자실사는 가치평가와 목적이 다릅니다. 가치평가가 "이 회사가 얼마인가?"를 계산하는 작업이라면, 실사는 "이 회사에 숨은 리스크는 없는가?"를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CaPex 검토도 그 관점에서 이뤄집니다.
(1) 적정 투자 수준 파악 (Normalized CaPex)
과거 3~5년간의 CaPex 추이를 분석해 "이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려면 매년 얼마를 투자해야 하는가?"를 파악합니다.
특정 연도에 투자가 급증했다면 → 일회성인지, 앞으로도 필요한지 확인
최근 3년간 투자가 거의 없다면 → 설비 노후화로 인수 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할 가능성
실무에서는 과거 CaPex가 감가상각비 대비 어느 수준인지를 보는 것이 빠릅니다. 제조업 기준으로 감가상각비의 100~130% 수준이면 정상, 50% 이하면 투자 부족, 200% 이상이면 공격적 투자 또는 노후 설비 일괄 교체로 해석합니다.
(2) 노후화 위험 점검 (QoA: Quality of Assets)
장부상 자산이 100억 원이어도, 15년 전에 취득한 기계들이라면 실질 가치는 낮습니다. 실사팀이 공장을 방문하는 이유는 다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기계가 실제로 정상 가동되고 있는가?
유휴 설비는 없는가?
몇 년 후 교체가 필요한가?
동종 업계는 이미 신형 설비를 도입했는데, 이 회사만 구형을 쓰고 있지는 않은가?
현장 실사를 진행하다 보면, 장부상으로는 멀쩡한 기계가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거나 부품 조달이 안 돼 방치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괴리를 찾아내는 것이 실사의 핵심입니다.
(3) 인수 후 필요 투자 산정
"이 회사를 인수한 후 3년 안에 얼마를 추가로 투자해야 하는가?"가 명확해야 인수 가격을 제대로 협상할 수 있습니다.
예시:
현재 기업가치 평가: 300억 원 / 인수 후 필요한 공장 리모델링: 50억 원 / 노후 설비 교체: 30억 원
실질 인수 비용: 380억 원
매각 대상 기업 중에는 이런 숨은 비용이 상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매각 직전까지 오너가 투자를 최소화하며 버티다가 매각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사 보고서에는 반드시 "Post-acquisition CAPEX(인수 후 필요 투자)" 항목이 포함됩니다.
7. 산업별로 다른 CaPex의 의미
장치산업 (반도체, 철강, 화학, 디스플레이)
초기에 막대한 CaPex 필요
일단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높은 영업레버리지 효과
한번 잘못 투자하면 회복이 매우 어려움
제조업 (기계, 자동차 부품, 식품)
중간 수준의 지속적 투자 필요
매출액 대비 CaPex 비율: 통상 5~10%
설비 노후도, 생산효율성, 유지보수 이력이 중요
소프트웨어·서비스업
CaPex 비중이 낮음 (주된 비용은 인건비, 즉 OPex)
주요 자산: 개발인력, 지적재산권
인력 유출 위험과 기술 경쟁력이 핵심 평가 요소
마치며
CaPex는 경영진이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공격적인 CaPex 집행은 성장에 대한 강한 확신의 표현일 수 있고, 반대로 CaPex를 과도하게 줄이고 있다면 현금 확보가 시급하거나 산업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핵심은 "이 회사가 벌어들인 돈(EBITDA) 안에서 필요한 투자(CaPex)를 감당할 수 있는가"입니다. 성장 스토리가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그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현금을 투입해야 한다면 주주에게 돌아올 몫은 남지 않습니다. M&A 준비나 투자 유치 시, CaPex를 정확히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기초가 됩니다.


